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사극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인조 때의 병자호란 이후로 주인공 조정석은 왕자시설 진한대군 때 청으로 끌려갔다 다시 돌아와서 맞게 되는 조선에서 겪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실제로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와 차남 봉림대군은 볼모로 청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청으로 간 두 아들은 인질생활 동안 청나라의 강대함을 느낀 소현세자는 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신식문물을 익혔다면, 봉림대군은 반청과 북벌의 마음을 더욱 키우게 되었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 현실 인식을 달리 하였는데, 이러한 흥미로운 역사적 이야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선 인조의 두 세자, 청나라 인질생활에서 현실을 달리 인식하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세자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것은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장남 소현세자와 둘째 봉림대군은 청나라의 수도인 만주의 심양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똑같이 인질 생활을 경험했지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현실 인식은 완전 정반대가 됩니다. 원래 조선인의 생각 속에 여진족은 짐승과도 같은 오랑캐였기 때문입니다.
소현세자, 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다.
소현세자는 조선시대 왕족 중에서 가장 아까운 인물 중에 한 명입니다. 군주로서의 자질도 뛰어났고 외교적인 센스도 충만했습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라는 초라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담대한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인조는 청과 상대하기 싫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의 거의 모든 일을 소현세자에게 맡겼습니다.
소현세자는 세자이자 외교관이었던 겁니다. 본인 또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버지 인조와 백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세자를 함부로 대했던 청나라 사람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똑똑하고 야무진 세자를 좋아하게 됩니다.
북경에 잠시 머물때는 북경에 와 있던 예수회 신부인 아담 샬과 만나게 됩니다. 그를 통해 천주교와 함께 서양의 뛰어난 과학 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세자는 세계적인 안목을 갖추게 됩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조선의 서구문물 수용은 100년은 더 빨라졌을 것 같습니다.
세자빈 강 씨, 청으로 끌려온 조선 백성을 구하다.
소현세자의 부인인 세자빈 강 씨도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진 먼 곳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예비 국모로의 위엄을 갖추고 고군분투를 합니다. 당시에 청나라는 세자를 비롯한 조선인 관리들에게 자급자족하라며 땅을 나눠주었습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은 이 땅에 농사를 지어 거기에서 나온 농산물로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청에 인질로 잡혀 있던 조선인 포로들의 몸값을 지불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50만명의 백성들을 구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현세자 부부는 청나라 청태종의 신임을 받으며, 입지를 굳힙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꼭 한번 주목을 해봐야 할 부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조의 질투 그리고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한 번은 인조가 몸이 안좋아져서 세자가 일시적으로 귀국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청태종은 세자를 위해 직접 연회를 열어주며, 청태종이 얼마나 세자를 신임하는지 이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이 소식을 듣고 극심한 분노와 질투를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무릎을 꿇게 한 청태종이 세자를 위해서는 송별연을 베푼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인조의 마음속에서는 세자가 자신의 왕 자리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싹이 자라 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에 의해 명나라는 무너지게 됩니다. 드디어 9년만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 인질로 잡혀간 조선인들은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죽습니다.
사인은 학질이란 병이었습니다. 이병은 중병이 아닌데 왕의 주치의인 이형익이란 사람이 세자에게 병을 고쳐준답시고 침을 놨는데 사흘 뒤 사망을 한 것입니다.
'얼굴에 있는 7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검은 천으로 얼굴이 반을 가렸는데 사람들이 얼굴과 천을 구분하지 못했다.' - 인조실록 6월 27일
실제로 독살을 당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담당의사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것은 이 시대의 관례였는데도 인조는 주치의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봉림대군도 감기에 걸렸는데 이형익에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거부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소현세자에게는 세자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소현세자가 죽으면 적장자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차남인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시동생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 강 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뀝니다. 이건 완전히 인조가 세자빈을 내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자빈 강 씨를 모시던 시녀들이 줄줄이 누명을 쓰고 처형을 받는 일이 벌어집니다. 인조에게는 아들도 며느리도 권력에 방해되면 제거할 수 있는 정적들이었던 겁니다. 결구 인조는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고 세자빈 강 씨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어린 두 손자들도 귀양을 보낸 뒤 죽입니다.
세자의 묘도 지관들의 반대에도 흉지에 쓰고, 그 지관들에게 곤장을 칩니다. 세자의 묘 명칭도 원이나 릉이로 부르지않고 소현세자묘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인조가 죽을 때 까지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의 묘에 단 한번도 가지 않습니다.
아들을 죽였던 또 다른 왕이 있습니다. 바로 영조.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죽이고 난 후 매일 사도세자의 묘에 가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을 본 세손 정조는 할아버지의 가슴아픔을 알기에 자기아버지를 죽인 영조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같은 아들을 죽인 왕이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은 많은 인조의 권력욕으로 인한 것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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